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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 그래', 가수 양희은의 담담한 인생 에세이

by 맛 멋 미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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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양희은 소개

 

  1952년 서울태생인 작가 양희은은 청소년 시절에 서울 YMCA가 운영하던 청소년 쉼터 "청개구리"를 다녔는데 그녀의 음악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김민기를 만났다. 김민기가 없었다면 현재의 양희은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육군 대령이었으나 39세의 나이로 일찍 사망하고, 어머니가 보증을 잘못 선 데다가 어머니의 가게인 양장점에 불이 나서 집안이 기울어 대학시절 끼니는 물론이고 교통비조차 없어서 걸어 다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먹고살기 위해 노래를 해야만 해서 송창식에게 무대에 올려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송창식에게 '형 저 노래하고 싶어요'라고 하자 송창식은 '노래하고 싶어?'라고 묻고는 자신이 공연하던 맥주집에 데려가서 자기 공연시간의 일부를 떼줘 무대에 세워줬다. 사람 추천 안 하기로 유명한 송창식이 추천한 사람은 양희은이 최초라고 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가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1년 9월에 발매된 양희은의 첫 정규앨범 "양희은 고운 노래 모음"을 냈는데 여기에 수록된 김민기의 "아침이슬"과 "세노야"는 양희은의 대표곡이 되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맑은 목소리보다는 중후한 성량으로 노년 여성의 이상적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음색을 가졌다. 여기에 본인의 곡들도 가사 하나하나가 연륜을 담고 있어 청자들의 감성을 금방 끌어낼 수 있는 가수, 특히 노래로 구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은 대한민국에서 따라올 가수가 없다. 엄마의 입장으로 부르는 노래도 몇 곡 가지고 있으며 워낙 음색이 노래의 감수성과 잘 맞아떨어져서 방송에 출연해 "엄마가 딸에게"를 불렀을 땐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꽃다운 나이 칠십 일세, 매일 아침 청취자들과 친근한 대화를 나누는 친구 같은 라디오 DJ이자 데뷔 52년 차를 맞이한 가수이다. 사람들을 웃기는 걸 좋아해 지금도 코미디언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대박 웃기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챙겨주고 싶은 이들을 불러 갓 지은 밥을 맛나게 먹이는 걸 좋아한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밥심이 조금은 보탬이 된다고 믿는다. 노란 메모 패드와 1mm 검정 볼펜을 짝꿍 삼아 글을 쓴다. 시간은 좀 걸려도 볼펜을 쥐고 써야 생각도 잘 흘러가고 본인다운 글이 써진다고 한다. 세상 흐름에 안 맞는다지만 어쩌겠나? 그녀는 이 역시도, "그러라 그래!"라고 한다.

 

'그러라 그래' 책 내용

 

  이 책은 제목만 보아도 인생에서 충분한 가치가 느껴지는 그런 책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대사, 표현 그리고 깊이 있는 철학에 대입해 볼 수도 있는 그러한 문장인 듯 느껴진다. 책 내용 중에 지인의 부탁으로 주례를 설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주변에서 뜨악한 반응들이 있었다 한다. 가수로서의 양희은 씨를 좋아하는 젊은 팬들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말을 듣고는 오히려 주례를 서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여자가 더구나 가수가 주례를 선다는 그 사실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사람들의 편견에 마주 서게 된다. 그녀는 "그러라 그래~~ 난 내가 하고 싶은 건 할 것이다"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어떠한 암묵적인 질서를 갖고 있던, 그것이 옳던 그르던 관계없이 "그러라 그래~~ 나는 내 일을 한다"이런 내용인 듯하다. 자기 다운 삶을 향한 시도들이 주변인들의 간섭과 압력으로 인생의 과정에서 좌절되는 것들이 인간의 삶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한국인의 삶이 그러한 면이 강한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가 지금 이럴 때니? 너는 지금 이러이러해야 된다. 이 나이에는 이러이러해야 되고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 된다는 식의 압력을 받게 되면서 본질적인 자신을 찾고자 하는 시도들이 무산이 되는 현상이 한국에서는 아직 강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요즘의 세상은 기업체에 들어가도 평생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절인데도 남들이 하는 데로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강요받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라 그래~~" 나는 내 길을 간다. 정말 멋있는 문장입니다. 양희은 씨는 젊었을 때 무척이나 활동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주변인을 잘 챙기고 거들어 주느라 바쁜 세워을 보냈다. 하지만 서른 살 때 3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지낼 때 병문안을 오는 지인들을 보면서 인간관계를 정리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병문안 온 사람들은 자신이 그녀의 입장(3개월의 시한부 환자)이 아닌 것을 안도하며, 위로를 마치고 가는 길에 암검사를 하고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 다 쓸데없다고 느꼈답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몇 사람이면 만족하고 여러 사람 욕심 낼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겁니다. 그녀는 많은 사람과 마음을 나누려면 그만큼 많은 애를 써야 하고, 그러면 생색이 되어 보답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무의식 중에 생기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로 인해서 서로의 관계가 힘들어지고, 그 결과 기대를 하게 되어, 기대에 못 미치면 서운한 마음이 들고, 또 상처를 많이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함께 했던 시간들 그 자체로 감사하고 즐거워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털이 많은 강아지를 입양하여 기른 적이 있는데 자꾸 픽픽 쓰러지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잘 먹이고 마사지도 해주고 했는데 나아지는 상태가 보이 지를 않았다. 우연히 목부근 털밑에 조여있는 목줄을 발견하여 끊어주고 나니 활발하고 건강하게 지내게 되었다.  이것을 겪으면서 그녀는 상처란 목걸이를 잘라내듯이 털어버리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상처는 내보이면 더 이상 상처가 아닌 것이고,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끼리 서로 껴안아 줄 수도 있고, 서로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상처로 상대의 상처를 위로할 수 있고, 내 상처는 상대의 상처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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